주체105(2016)년 10월 8일 《통일의 메아리》
한 보건일군의 당부
북녘의 오늘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한 보건일군의 당부》,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후보원사 교수 박사인 최창식동무는 50여년세월 보건부문에서 일해오고있습니다. 한때 의학과학원 과학부원장, 보건성 부상, 보건상을 력임해온 그는 현재 보건성 보건경영학연구소 소장으로 사업하면서 저술활동을 벌리고있습니다.
오래동안 보건부문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근무해온 올해 76살인 그에게 있어서 한생에 지울수 없는 추억으로 남은것은 무엇이며 후대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호기심을 안고 얼마전 보건성 보건경영학연구소를 찾은 우리는 최창식박사와 마주앉았습니다.
인생의 로년기에 이른 사람들 누구나 그러하듯이 최창식동무에게도 못잊을 가지가지의 추억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 누구나 치료비를 모르고 사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참다운 우월성에 대해 전하는 그의 추억담은 우리의 가슴속에 깊은 여운을 남기였습니다.
1990년대말 동남아시아지역 보건상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어느 한 나라에 갔던 그는 그 나라 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 서기관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새벽 3시경이였습니다.
서기관은 9살 난 아들이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굴자 가까이에 위치한 병원으로 그를 업고 뛰여갔습니다. 그런데 병원의 접수실 의사는 환자의 병상태를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작정 등록금 20US$를 내라고 하는것이였습니다.
조국에서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서기관은 놀랐습니다. 조국에 있을 때에는 병이 나면 그 어느 병원에나 찾아가 무상치료를 받군 했던 그로서는 그럴만도 한 일이였습니다.
서기관은 의사에게 아이의 병이 중한 생각만을 하면서 급히 오다나니 돈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진찰을 하는 사이에 돈을 가지고오겠으니 접수만이라도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막무가내였습니다.
할수없이 서기관은 병으로 신고하는 아들을 눕혀놓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얼마후 병원으로 달려온 서기관은 20US$를 물고 접수를 하였습니다. 진찰실에 이르러 필요한 액수의 돈을 또 내고 진찰을 받고보니 급성충수염이였습니다.
진찰실의 의사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피검사, 렌트겐검사, 복부초음파검사 등을 해야 한다면서 서기관에게 실험검사표 몇장을 떼주었습니다.
검사실에 가서 문의하니 한건한건의 검사를 진행하는데만도 각각 20~30US$의 돈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 모든 검사에 필요한 돈이 없었습니다.
급성충수염인 경우 순간이라도 지체하면 복막염으로 넘어가 자칫하면 생명이 위험할수도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은 서기관은 필요한 돈은 후에 다 지불하겠으니 한시라도 빨리 검사를 해줄수 없겠는가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병원측으로부터 랭대를 받았습니다. 하여 다시금 집에서 필요한 액수의 돈을 가지고와 물고서야 검사를 받을수 있었습니다. 허나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병원측의 말을 듣고 수술장에 도착하니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있기라도 하였던듯 외과의사가 마주 나오더니 수술비 280US$를 내라는것이였습니다. 서기관이 돈이 얼마간 모자란다고 하자 의사는 수술비도 없이 병원에 오는가고 이르고나서 이내 사라졌습니다.
서기관은 인간의 생명보다 돈을 더 귀중히 여기는 주재국의 병원의료일군들이 극도로 혐오스러웠습니다. 그는 아들의 생명을 위해 세번째로 다시 집으로 달려가 필요한 돈을 가지고왔습니다.
그렇게 되여 수술은 진행되였습니다.
수술장밖에서 아들의 생사여부를 걱정하며 의자에 앉아있던 서기관은 그날 지금껏 모르고 받아온 우리 나라 인민적보건제도의 시책이 눈물겹게 안겨와 조국의 하늘가를 바라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시 최창식동무를 만난 자리에서 그곳 대사관의 일군들과 가족들은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가보아야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마련해주고 빛내여주시는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가 얼마나 좋은가 하는것을 페부로 절감할수 있다고 한결같이 말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찌 그들만의 심정이라 하겠습니까.
보건성 보건경영학연구소에는 지난해에 아시아의 어느 한 나라에 의료실습을 갔던 실장이 있습니다.
어느날 급성위장염으로 주재국의 병원에 갔던 실장은 하루밤 치료를 받는데만도 수백US$의 돈이 들었다고 하면서 만일 필요한 액수의 돈이 조금이라도 모자랐더라면 병원측으로부터 대번에 거절을 당했을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보건부문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오래동안 일해온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우월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고 자부해온 최창식동무였습니다. 하지만 사업상용무로 다른 나라에 갈 때마다 너무도 많은것을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쉬이 잠들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그가 들려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었습니다.
언젠가 유럽의 어느 한 나라의 병원에 갔던 최창식동무는 그곳에서 중병으로 오랜 기간 입원해있는 한 환자를 만났습니다. 그날 환자는 그에게 자기들부부는 결혼후 서로 다정히 살아왔지만 지금은 갈라져살고있다고, 그 리유는 부부가 함께 살면 보험금이 높아져 병치료에 필요한 돈을 물수 없기때문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고 합니다.
최창식동무의 이야기를 점도록 듣는 우리의 머리속에는 언제인가 의학의 륜리를 두고 열정적으로 토로하던 누군가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환자치료에서 나서는 의료일군들의 행동규범과 의사들사이의 도덕적관계를 밝힌 의학륜리는 고대시기에 이미 제기되였습니다.
의학의 시조로 알려진 고대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의사의 도덕에 대하여》에서 의사는 치료하기전에 치료비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말며 뢰물을 섬기도록 하여 환자들이 불안하게 하지 않도록 할것 등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그후 히포크라테스의 이 주장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의사들이 지켜야 할 행동질서로 보다 정립되였습니다.
의학륜리학의 내용은 해를 거듭하며 더욱 보충완비되였으며 20세기 중엽에는 세계의학협회에서 《국제의학륜리법규》까지 채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나 지역은 물론이고 그 어느 개인병원이나 국영병원에서도 고대시기에 제기한 의학의 륜리를 오늘도 지키지 못하고있습니다. 오히려 날이 감에 따라 의사와 환자사이의 관계는 판매자와 구매자사이의 관계로 되여버리고 보건의 상업화가 촉진되여 돈없는 사람은 병원문앞에도 못 가보고 숨지는 비극적현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최창식동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린 무상치료제의 시책속에 병치료를 받는 그때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상 곳곳에는 돈이 없어 병원문앞에도 가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돈때문에 생리별을 당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누구나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보건제도를 굳건히 지키고 빛내이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시여 세상에 더욱 빛을 뿌리는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
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일떠선 현대적인 병원들에서 돈 한푼 내지 않고 병치료를 받는것이 례사로운 일로 되고있다고 하여 결코 당연한것으로 여겨서는 안됨을 강조하는 박사의 이 말은 비상한 충격을 안고 우리의 가슴속에 마쳐왔습니다.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타고난것으로 생각지 말아야 한다는, 행복이 귀중할수록 그것을 목숨바쳐 지킬줄 알아야 한다는 그의 심중의 말을 우리는 전세대가 후대들에게 전하는 절절한 당부로 깊이 새겨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보건일군의 당부》,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북녘의 오늘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