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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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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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10월 4일 《통일의 메아리》
《10월상봉의 나날에》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일화묶음 《10월상봉의 나날에》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륙로로

 

10월상봉의 첫 파격은 다름아닌 땅길이였습니다.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고저 김구, 김규식선생과 최동오를 비롯한 민족주의인사들이 통일애국의 뜻을 품고 결연히 38°선을 넘었던 그 땅길!  분렬 62년만에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남조선《대통령》이 걸어서 넘어오는 파격적인 현실이 펼쳐졌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뇌상봉을 앞두고 민족의 통일을 위한 일인데 우리가 그 어떤 형식과 틀에 매달리면 안된다고 하시며 38°선의 륙로를 따라 들어오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뿐만아니라 먼곳에서 오는 친혈육을 동구밖입구에까지 나가 반갑게 맞아들이던 조상들의 옛 풍습그대로 우리 일군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남측일행을 현지에 나가 맞아들이도록 동포애의 뜨거운 조치도 취해주시였습니다.

세계의 각광속에 로무현과 뜨겁게 상봉하시던 력사의 그날 장군님께서는 김대중《대통령》은 하늘로 오셨는데 로《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륙로로 오셔서 정말 큰 의미가 있다고 높이 평가하시였습니다.

민족의 통일을 위함이라면 천하도 통채로 열어주시는 장군님의 넓으신 도량과 포옹력에 매혹된 남측대표들은 저저마다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참으로 인정이 많으시고 대담하시고 통이 큰 지도자이시다.》, 《분단력사에 처음 있은 이번 륙로정상회담의 길을 마련해주신 국방위원장님께 인사를 드린다.》, 《로무현<대통령>은 임기말기에 행운을 받아안았다.》고 감격을 금치 못해하였습니다.

 

정례적이냐 수시로이냐

 

력사적인 첫 회담이 진행될 때였습니다.

회담과정에 문득 로무현이 위대한 장군님께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제안해올리였습니다.

뜻밖의 제의에 회담장안의 분위기는 한순간 긴장되였습니다.

바로 이때 장군님께서는 즉석에서 친척집에 갈 때 정례적으로 가는가? 수시로 놀러가는것이다, 국가간의 관계라면 정례적이라는 말이 맞지만 북남관계에서는 맞지 않다, 수시로 만난다고 해야 맞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북남관계는 언제든지 편하게 래왕할수 있는 관계라는 내용의 명쾌한 대답을 주시였습니다.

순간 크나큰 충격과 감동이 온 회담장에 차넘쳤습니다. 북과 남의 수뇌상봉이 국가와 국가간의 상봉이 아니라 민족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수시로 만날수 있는 한민족, 한혈육의 상봉이라는 너무도 명철하고 동포애적인 그이의 교시에 남측대표모두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회담전날 4. 25문화회관광장에서의 환영행사때 벌써 따뜻한 환대와 파격적영접을 베푸신 장군님의 사려깊은 모습에서 멀리 떨어져 지낸 혈육을 맞이하는듯 한 친근감에 피는 역시 물보다 진함을 온몸으로 절감했던 그들이였습니다.

남측의 한 대표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남북관계를 국가적관계로 보는것이 아니라 집안끼리 모인다는 관점이 강하셨다.》고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무료로 오셔도 됩니다.

 

가깝고도 멀게만 여겨왔던 평양, 두렵고도 생소한 첫 평양길에서 로무현은 과연 무엇을 안고 갔던가.

그것은 한마디로 자기들을 외국의 국빈이 아니라 한민족의 귀빈으로 따뜻이 대해주시는 위인의 숭고한 민족애, 뜨거운 인간애였습니다.

상봉 전기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잠자리는 편했습니까, 점심을 잘 드셨습니까, 옥류관국수를 드셨다는데 평양국수와 서울국수중 어느것이 더 맛있었습니까, 수시로 만나자고 했으니 또 많이 만납시다 등 《대통령》내외와 수행원들의 생활을 가족처럼, 친지처럼 세심히 보살펴주시였습니다.

더우기 그이께서 10월 3일 오후 회담을 앞두고 로무현《대통령》이 무리하게 여러차례나 영빈관현관까지 나오게 하지 말고 자신께서 회담장복도를 따라 걸어들어오면 문앞에서만 영접하도록 해주신 사려깊은 조치는 《대통령》내외는 물론 남측일행모두를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하기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단 한번의 상봉을 통해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애와 풍모에 크게 감복한 로무현은 옥류관연회때 《북에 막상 와보니 음식도 같고 잠자리도 같고 통역도 필요없는 한식구라는 정말 포근한 감을 느꼈다.》고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습니다.

그가 회담일정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돌아가기에 앞서 장군님께 퇴임후 다시한번 평양을 방문하고싶다고 심중의 말씀을 스스럼없이 올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무료로 오셔도 됩니다.》라고 로무현의 청을 쾌히 승낙해주시였습니다.

 

지금까지 일화묶음 《10월상봉의 나날에》를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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