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6월 27일  
첫페지/ 북녘의 오늘/ 주요방송기사/ 방송극/ 보도/ 아시는지요?/ 문예물/ 동영상/ 사진/ 유모아와 일화/ 꽃망울실/ 청취자마당
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주체105(2016)년 9월 18일 《통일의 메아리》
동틀무렵(22)

장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엄흥섭작《동틀무렵》, 오늘은 스물두번째시간입니다.

> <

《선생님, 왜 웃기만 하시고 말씀을 안하세요?》

영옥은 자기도 그 돌발적인 질문이 어색했고 또 우스웠던지 고개를 숙이고 웃고있었다.

찬수는 영옥이의 그런 질문이 사실을 몰라서 알려고 묻는다기보다는 이미 이러저러한 각도에서 잘 알고있으면서도 한번 시치미를 떼고 자기를 떠보자는 맹랑한 물음인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였다.

말하자면 결혼기에 있는 녀학생들이 이렇게 젊은 미혼인 자기와 같은 남선생을 한번 툭 건드려보는것이 다감한 처녀들의 심리로 보아 흔히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는 해석되지만 오늘 영옥이가 돌발적으로 이런 질문을 꺼낼줄은 전혀 몰랐던것이였다.

《선생님, 고향이야기라도 좀 해주세요. 네?》

《그래, 내 고향이야기가 그렇게 듣고싶어?》

《네.》

영옥은 어른에게 동화를 들으려고 달라붙는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럽게도 눈을 반짝거리며 찬수의 입을 바라보았다.

찬수는 잠간동안 침착한 표정을 짓고있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내 고향은 먼 남쪽 다도해가 보이는 아담한 농어촌, 앞으로는 푸른 바다 사나운 물결, 뒤로는 넓은 벌판 황금물결… 나는 어린시절을 거의 이 고장에서 살았어.》

갑자기 소년시절로 돌아간듯 찬수의 눈앞에는 과거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가도가도 끝없는 바다였지. 산더미같은 물결을 헤치며 조그만 쪽배를 타고 바다로 아버지를 따라 고기잡으러 다니기도 했고 황금물결 이는 무연한 벌판에서 송아지를 몰아 풀을 뜯기도 했지…》

《아이유, 재미있어요. 어서 계속하세요. 꼭 선생님이 시인이 되신것만 같군요.》

영옥은 흥미를 느끼며 바싹 다가들었지만 찬수는 웬 일인지 그 반대로 이야기를 더 해주기가 싫어졌으므로 입을 다물어버리고 담배를 꺼내피웠다.

찬수에게 있어서 소년시절을 회상한다는것은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니였다. 그것은 마치 쓰라린 상처를 건드리는것과 같이 괴로운 일이였다.

《어서 말씀하세요. 그렇게 바다를 좋아하셨는데 왜 이런 산골짜기를 골라 오셨어요?》

영옥이는 또 암팡진 질문을 했다.

《나는 바다에서 살았지만 늘 바다를 원망했어. 우리 집은 농사두 짓구 고기두 잡았어. 물론 우리 집만 그런것은 아니였어. 말하자면 우리 마을은 반농반어부락들이였지. 그러나 늘 생활들은 곤난했어. 일제와 지주에게 빼앗겼고 어장주와 어업회사의 선주들에게 빼앗겼으니깐…》

《그럼, 지금 부모님은 살아계셔요?》

영옥은 또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8. 15해방을 맞아 내가 도꾜에서 돌아오니까 아버지는 바다에서,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어. 내 형들은 징용으로 끌려간채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찬수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영옥의 얼굴빛은 흐린 날처럼 어두워졌다.

《말하자면 고향이라기보다는 타향같았지. 그래서 난 서울로 올라와 취직을 하려고 헤매였으나 누구 하나 나를 취직시켜주는 사람은 없었어. 도꾜에서는 그래도 내 그림이 입선이 되여 이름이 좀 났지만 고향에 돌아오니까 누가 날 알아주어야지. 난 얼른 우리 조선의 남북이 통일되여 독립이 되기만 기다렸지. 취직난은 심하고 생활문제는 절박했기때문에 나는 별별 일을 다했지. 소학교 교원, 간판쟁이, 수예사, 자수도안쟁이, 영화관 간판그리기… 그러다가 마리야녀학교에 취직되였던거야. 이젠 알았지?》

《정말 선생님이 그렇게 고생하신줄은 몰랐어요. 그럼 지금 고향에는 아무도 안 계셔요?》

《음. 일가집이 하나 있어. 5촌아저씨야. 그러나 알수 없어. 여러해동안 가보지 않았으니까…》

찬수의 이야기를 듣던 영옥은 잠간동안 명상에 잠기다가 갑자기 용기를 내여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생님, 정작 제가 알고싶은것은 쑥 빠졌어요. 왜 그건 말씀 안해주세요. 네?》

영옥은 갑자기 명랑해지며 깔깔 웃었다.

《뭘?》

《사모님 말씀이예요. 지금 어디 계셔요?》

찬수는 또 곤난한 질문에 부딪쳤다.

《글쎄, 그게 꼭 알고싶은가? 가르쳐주지. 고향에 있어. 어린아이가 주렁주렁 매달렸지. 자, 이젠 시원해? …》

찬수는 어느덧 쾌활하게 웃었다. 영옥이도 한바탕 따라웃었다.

그러나 웃음이 그친 뒤에는 서로 약속이나 한듯이 침묵이 계속되였다.

> <

지금까지 장편소설《동틀무렵》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스물두번째시간이였습니다.

감 상 글 쓰 기
:
:
:
:
:  protect_autoins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