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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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9월 8일 《통일의 메아리》
미제의 남조선강점은 최대의 인류사적죄악(1)

1945년 9월 8일. 이 날은 미제침략군이 우리 조국의 절반땅을 강점함으로써 민족분렬의 력사, 치욕의 력사가 시작되였고 우리 겨레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재난이 들씌워진 날입니다. 그 저주로운 날이 없었다면 조선민족은 애당초 북과 남이라는 말도 몰랐을것이며 조선반도가 전쟁위험이 가장 짙은 세계최대의 열점지역으로 되지도 않았을것입니다.

지금 우리 겨레는 한두해도 아니고 장장 70여년동안이나 남조선을 타고앉아 주인행세를 하면서 온갖 범죄적만행을 일삼고있는 미제에 대한 치솟는 증오로 가슴끓이고있습니다.

그럼 이 시간에는 《미제의 남조선강점은 최대의 인류사적죄악》, 이런 제목으로 두회분에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첫번째시간입니다.

 

우리 인민은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민족적불행과 고통을 겪게 되였습니다. 5천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이 반세기이상 분렬의 비극과 치욕을 강요당하고있는것은 미국의 남조선강점정책에 기인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패망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구실로 남조선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그것은 궤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저들의 세계지배전략실현에서 정치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전략적요충지인 조선반도에 눈독을 들이고 이미 오래전부터 대조선정책을 작성추진시켰습니다.

벌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엽에 《조선독립방안》이라는것을 들고나온 미국은 그후 여러 국제회담들에서 일제를 대신하여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실현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였던것입니다.

여기서 미국이 주장한 《신탁통치》의 명분은 일제의 군사통치하에 있던 조선민족이 《자치능력》을 가지고있지 못하기때문에 대국들의 공동관리밑에서 그것을 키운 다음 조선에 독립을 부여한다는것이였습니다. 미국은 원래 《신탁통치》를 실현하는데서 결정적인것은 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는것이며 점령국들가운데서도 저들이 지도적지위를 차지하는것으로 타산하고있었습니다.

1945년 8월에 이르러 급변하는 전쟁형세와 조건은 조선반도에 대한 신식민주의적통치를 실현하려는 미국에 매우 불리하게 번져갔습니다. 이에 위구를 느낀 미국은 전조선을 강점하려던 침략야욕을 일시 누르고 어떻게 하든 조선의 절반땅이라도 차지할 계책을 꾸미였습니다. 그 모략의 산물이 다름아닌 38゜선에 의한 《작전분담선》이였는데 이것은 패망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38゜선을 계선으로 하여 그 북쪽은 이전 쏘련군이 맡고 그 남쪽은 미군의 작전지역으로 한다는것이였습니다.

남조선잡지 《신동아》는 《38゜선분할과 미군진주가 단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하기 위해서라면 이미 37゜선까지 내려와있었던 쏘련군이 그대로 부산까지 내려오는것이 600여mile 떨어진 미국이 오는것보다 훨씬 빠르고 쉬웠을것이다. 따라서 38゜선확정은 쏘련군이 조선반도전체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결정이였다.》고 까밝혔습니다.

이것을 놓고 보아도 미국의 38゜선분렬안은 조선반도의 절반땅이라도 차지해야 앞으로 이를 발판으로 하여 전조선을 강점하고 나아가서 아시아와 전세계지배목적을 실현할수 있다는 타산밑에 고안된것이였습니다.

1945년 8월 13일 미제는 미극동군사령관 맥아더에게 남조선을 비롯하여 미국이 책임진 지역들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을것을 지시하였습니다. 맥아더는 24군단장 하지에게 일본군의 항복서를 받아내며 미국을 대표하여 남조선을 점령하고 통치할것을 지시하였습니다.

맥아더는 요꼬하마항에 입항한 미제침략군 전함 《미주리》호의 함상에서 일본과의 항복문서조인식을 끝내고 조선의 북위 38゜선 이남을 점령한다는것을 공포하였으며 련이어 미제침략군 24군단에 남조선상륙을 명령하였습니다.

1945년 9월 4일 미제침략군 24군단의 선발대가 김포비행장에 도착한데 이어 9월 8일부터 10월중순까지 군단무력이 인천과 부산, 목포에 무혈상륙하였습니다.

사실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미군에 의한 일제의 《무장해제》는 순전히 강점구실에 불과한것이였습니다.

1945년 당시 우리 나라는 련합국의 적국이 아니였습니다. 조선은 다른 나라의 자주권을 침해한적이 없었고 그 어떤 외부세력의 도움이 없이도 조선인민은 자기의 손으로 사회를 관리운영하고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일떠세울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전에 아시아에서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조선을 발판으로, 군사교두보로 삼고 아시아와 나아가서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품고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정책을 실시하여온 미국은 일제의 패망을 조선지배야망실현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였던것입니다.

남조선을 강점하고 식민지화하여 조선반도를 둘로 갈라놓음으로써 남조선땅을 침략정책의 군사적부속물로 만들자는것이 미제의 속심이였습니다. 미제가 1950년대초 조선전쟁을 도발하였다가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한 후에도 남조선강점 미군을 《유엔군》으로 광고하면서 철수시키지 않은것은 그에 대한 실증으로 됩니다.

법적으로 보아도 미군의 남조선강점은 명분이 없습니다. 조선정전협정에는 협정체결후 3개월이내에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조선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철수문제를 협의하게 되여있습니다.

전쟁과 관련한 국제법률에는 전쟁이 끝난 다음 교전당사자들이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자기 나라 군대를 철수시키는것이 원칙으로 되여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마치 저들이 남조선의 그 무슨 《진실한 우방국》, 《굳건한 동맹자》, 《인권의 수호자》나 되는듯이 미화분식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갖은 요설을 피워대고있지만 미국은 남조선의 《해방자》, 《보호자》가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자유와 권리를 깡그리 말살한 침략군, 강점군이라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습니다.

 

지금까지 《미제의 남조선강점은 최대의 인류사적죄악》,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첫번째시간을 여기서 마칩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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